인간에게서 전해진 인수공통감염병
서식지 파괴, 밀렵보다 더한 위협될 수 있어
유인원 지키려면 주변 인간 환경부터 위생적으로 바꿔야
사람이 사는 곳까지 찾아온 침팬지들. 인간-침팬지 간 접촉이 늘어나며 인수공통감염병 전파가 늘어났다./Ronan Donovan
인간이 야생동물에게 병원체를 점점 더 많이 전달하면서 침팬지, 고릴라 같은 멸종위기 종을 더한 위기로 내몰고 있다. 인간에게는 가벼운 감기로 지나갈 수 있는 바이러스 감염이 유인원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16일(현지 시각) 침팬지들이 인간유래 인수공통감염병에 전염돼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과학자들이 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전했다.
평범한 호흡기 바이러스가 침팬지에게는 ‘에볼라’ 급... 면역적으로 낯설어서
토니 골드버그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글로벌건강연구소 교수는 2017년 우간다 키발국립공원에 사는 침팬지 205마리가 기침, 재채기를 하다가 결국 죽은 것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45㎏ 암컷 침팬지 ‘스텔라’를 부검했다. 스텔라의 흉강, 특히 심장 주변에는 체액이 가득했다. 폐 조직은 붉은 색으로 딱딱해져 있었다. 골드버그 교수는 스텔라가 극심한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원인을 에볼라바이러스 감염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유전체 분석 결과, 스텔라가 감염된 것은 에볼라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평범한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메타뉴모바이러스’로 나타났다. 골드버그 교수 연구진은 2017년 스텔라를 비롯해 침팬지 무리의 12%가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었다고 분석했다.
비단 감기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동물은 인간으로부터 A형 간염바이러스와 A형 독감(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부터 결핵 같은 세균, 편모충(Giardia duodenalis) 같은 기생충까지 다양한 병원체를 옮는다.
인간에게는 기침, 재채기, 오한 등 비교적 가벼운 증상을 겪게 하는 바이러스라도 야생동물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친숙한 바이러스지만 야생동물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인수공통감염병에 감염되는 동물은 개, 치타, 홍합, 코끼리 등 다양하지만 고릴라, 침팬지 같은 유인원이 특히 취약하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98% 이상 유사한 탓에 쉽게 감염되지만, 유전적인 저항성이 인간과는 다르게 진화해서다. 물론 이들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어 면역력이 없다는 것도 이유다.
우간다 야생동물 보존 단체인 ‘공중보건을 통한 보존(Conservation Through Public Health)’은 아프리카 보호 구역에 사는 일부 유인원 집단에게는 서식지 손실이나 밀렵보다 인수공통감염병이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라고 보고 있다. 키발국립공원에서도 인간 라이노바이러스(감기바이러스 중 하나)와 메타뉴모바이러스 같은 호흡기 병원체가 지난 35년 넘게 침팬지를 59% 이상 죽게 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골드버그 교수는 “이런 문제는 우간다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심각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생태 보존 문제에 비해 거의 연구되지 않았고 대중의 인식도 부족하다”고 짚었다.
유인원이 인수공통감염병에 걸려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낸 사람은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 박사다. 구달 박사는 1966년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 침팬지 10마리 역시 같은 바이러스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1986년에는 침팬지가 아주 빈번하게 감기에 걸리며, 인간과 동일한 전염병에 걸릴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그는 침팬지 무리의 전반적인 건강이 인간 때문에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과 대중을 설득하기엔 부족했다.
2008년 파비안 렌더츠 독일 로버트코흐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코트디부아르 타이국립공원에 사는 침팬지 무리에게 10년 동안 발생한 주요 호흡기 질환 발생 원인을 유전적으로 분석한 결과 인간 유래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수공통감염병이 유인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처음 찾아낸 셈이다.
골드버그 교수는 “이미 아프리카 동부와 서부에 사는 고릴라와 침팬지, 보노보는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며 “인간 침해로 인한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는 데다 인간의 질병까지 전해지면 이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미 유인원 집단은 너무 작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개체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우려했다.
토니 골드버그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글로벌건강연구소 교수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죽은 침팬지를 부검하고 있다./Ronan Donovan
”유인원 지키려면 주변 인간 환경부터 위생적으로 바꿔야 해”
과학자들은 멸종위기종인 침팬지가 더 이상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을 현재 연구 중이다.
골드버그 교수는 먼저 유인원이 어떻게 인간의 질병에 감염되는지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대유행시 어린이들이 감염되더라도 무증상이 많고, 이때문에 성인 가족에게 옮기기 쉬웠다는 것에 주목했다. 유인원 역시 무증상 감염 어린이에게 바이러스 전염되기가 쉽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2019~2021년 키발국립공원 주변 초등학교 3곳을 다니는 초등학생 203명에게 매달 콧속을 면봉으로 채취를 해 바이러스 분석을 했다. 그들 중 31명은 부모가 키발국립공원에서 근무하고 있어 마찬가지로 매달 콧속을 채취했다. 그리고 키발 국립공원에 사는 침팬지 55마리의 배설물 샘플을 수집했다.
그 결과 키발국립공원에서 침팬지를 감염시킨 모든 호흡기 병원체는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도 있었다. 2020년 3~9월 코로나19 대유행 봉쇄 기간 동안 침팬지 집단에서도 호흡기 바이러스 전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인간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전염됐다는 근거다.
추가 연구를 통해 골드버그 교수는 2023년 한 해에만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최소 5곳에서 침팬지에게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그 교수는 “단순히 어린이들이 숲이나 국립공원에 들어가는 것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며 “침팬지를 구하려면 어린이들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흙으로 된 교실 바닥을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학교 내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도 시설을 여럿 설치하는 것이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재채기가 나올 때 손이 아닌 팔로 입을 가리고 해야 한다는 식의 위생 교육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공원 등을 찾는 성인들에 대한 대안도 마련되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유인원 서식지 관광시 지켜야할 지침을 발표했다. 야생 유인원을 만날 때 최소 7m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기침이나 재채기 등 몸이 불편한 사람은 유인원 서식지에 들어가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 지침을 만드는 데 참여한 렌더츠 교수는 “가령 인간으로부터 유인원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죽고 표범이 이를 잡아먹으면 또 감염되는 식으로 야생동물끼리 바이러스 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침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관계자와 관광객들이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연구자들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어떻게 전파하는지,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추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간다 키발국립공원을 찍은 항공사진. 농경지가 늘어나며 침팬지가 살고 있는 숲의 면적이 줄어들었다./Ronan Donovan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0108-6
Primates(2019), DOI: https://doi.org/10.1007/s10329-019-00732-1
Royal Society Open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098/rsos.180840
Current Biology(2008), DOI: https://doi.org/10.1016/j.cub.2008.01.012
Frontiers in Public Health(2020), DOI: https://doi.org/10.3389/fpubh.2020.00001
(비밀상점)
100만포 판매! 남자의 활력부스터 마르문 특가
(1062)
과학/우주 월간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