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를 20번 만날 수 있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1943년생이다.
12. 크래쉬 Crash (1996) : 자동차 밖이(에) 없다.
지루했다. 새삼 의미없는 불평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거니와
위 40자평이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세계에 대한 무례한 접근임을 알지만, 긴 동어반복에 지친 마음이 그리 흘렀다.
프로이드로의 선연한 회귀 외에 이질적인 지점을 발견할 수 없음으로 인해 밀려드는 기시감들이 작품을 지배한다.
제 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황당한 위상 추락의 검열 소동을 비롯한 본편에 대한 호들갑도
이미 17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검열과 표현의 시소 게임 앞에 무력해졌다.
여전히 영등위라는 찬란한 조직이 있는 나라에서 김기덕은 2번의 항변을 발표해야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블로그에서 언제나 조회수가 가장 높은 글은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이며
글 안에 포르노라는 글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지독한 난문을 주마다 80여명이 클릭한다는 사실에서
여전히 음지에서 욕망을 호흡하는 가련한 인간 군상들을
상상할 때면 본편의 지루함이 당년에 찬사받은 사실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비행기라는 대상에 대한 패티쉬가 자동차로 이어지고,
자동차 충돌과 성애의 동일화 그리고 죽음 충동, 훔쳐보기와 동성애 시연이 영화의 전부라면 조금은 가난한 비평일까.
전술했다시피,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프로이드와 예수로 시작했으며
본편은 프로이드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지만, 라캉의 주이상스로도 표현될 수 있다.
더불어 감독의 특허인 인간 신체의 파편 변형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전작들을 이어간다고 하겠다.
<패스트 컴퍼니> 이후 두번째 자동차에 관한 영화로서 본편은
<코스모폴리스>가 거의 노골적으로 예수의 재림에 관한 서사인 것처럼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들이 숨겨놓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국 완연히 드러내기를 즐긴 것과는 다르게
검열에 걸릴만큼 노골적으로 여성의 음모 등이 보여진 전략 자체가 본편의 선명화 기법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자동차는 20세기에 실질적으로 인간의 제 2의 침대가 되었음을 굳이 상기할 이유도 없겠지만,
여기에 전쟁과 질병을 제외한 20 세기 가장 높은 사망율의
원인으로서 추진력을 발휘한 점도 본편의 근거가 된다.
비디오의 신체화로서 기계-인간이라는 측면을 굳이
조명한다면,
본편은 실질적으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세계 안에서 미디어가 아닌
외부의 기계를 인간과 접합시킨 첫 사례가 된다.
극중 모든 인물들은 자동차 안에서 실질적으로 안식과 흥분과 죽음을 교차하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향락한다.
<코스모폴리스>의 주인공이 하얀색 리무진 속에서 고행하다가 이탈함으로서 번
민, 회귀
하기를 반복했다면
본편에서 인물들은 모두 자동차 밖 자체를 거의 제외시키는 형국에 가깝다.
그들은 심지어 자동차 박에서도 바동차 사고 영상을
보고, 다음 충돌 시연을 고민하고 감행하는 시간으로 전환한다.
즉, 그들에게 자동차는 일종의 재탄생과 재기입의 공간이자 침대이며 묘지가 된다.
자동차 폐차장이 그들에게 주었을, 타인은 전혀 이해못할 흥분을 상상해보라.
문제는
위 40자평의 몰이해와 같은 자동차 밖의 존재라기보다
그들이 왜 하필 자동차를 고집해야하는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카섹스와 교통사고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언어쌍을 하나로 조립하는 데 이만한 20세기적 공간이 없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제임스 스페이더가 (활영)감독임에도 그의 영화 내 입지가
자동차 밖에서 그다지 뚜렷한 의미소로서 작용하지 못하고 생략되는 것을 비롯하여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오직 프로이드와 라캉의 세계 안에서만 복무하는 것이 미량 못마땅하다고 할까.
제임스 스페이더가 차선 이탈로 인해 자동차 사망 사고를 발생시키는 중죄를 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사적 처벌, 즉 상징계에서의 간섭이 가해지지 않는 지점이 초반부에 절대적 가정으로서 전제된 이후
사실상 영화는 오직 프로이드의 꿈에서으의 유영과
라캉의 실재계 진입으로의 몸부림 외에 외부가 없다.
즉, 이는 글자 그대로 성관계가 없다라는 라캉의 테제가 보였던 <M.버터플라이>와 동일 반복 후렴구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쉬이 볼 수 없는 당대의 걸출한 배우들
제임스 스페이더의 신경증적 얼굴
, 홀리 헌터의 단발 변신, 데보라 카 웅거의 육감,
로잔나 아퀘트의 자연스러운 기계 신체, 일라이어스 코티스의 전형적인 수난 파괴 선지자 형상이야말로
어쩌면 본편 <크래쉬>을 감싸안는 후인에 대한 유일한 충돌일지도 모르겠다.
<크래쉬>는 프로이드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라캉의 주이상스에 대한 단조로운 연가이면서
극도로 상징계-현실을 배제시킴으로서 20세기의 절대 기계인 자동차 인간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회계 정리 장부가 된다.
13. 엑시스텐즈 eXistenZ (1999) : 내 밖의 나는 있는가
서슴없이 망작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손쉬운 예측가능성의 부실함이라는 기존의 예단이 초점을 전혀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짖긏게도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예측 불가능성의 불가능함이 현실을 봉쇄하는 답답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작 <크래쉬>가 자동차 밖을 상정하지 않은 것처럼
본편 <엑시스텐즈> 역시 현실 따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반복된다.
여기서 현실이란 다름 아닌 기존의 제도와 권력이 무성하게 번성하여 감히 꿈꿀 자유가 없는 시공간이다.
데이비드 흄의 원인-결과의 필연성 부재가 곧바로 우연성의 전지전능을 불러올 수는 없는 이유는
그의 극단적인 경험론적인 입장이야말로 주체 자체의 소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곧 꿈이라는 설정 아래서 가장 하류적인 관용어구는 장자의 호접몽이겠지만,
호접몽은 흔히 생각하듯 주체와 대상이라는 피아 안에서 어떤 선후관계를 부인하는 데 반하여,
호접몽을 통해 본편을 파악하려는 이들에게 이미 자신은 나비가 아님을 자신하는 의지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간극이 있다.
누구도 나비가 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격정 토로가 본편의 유일한 전략이라면
아무리 반전에 반전, 배신에 배신, 신체 변형과 환각 게임이 첩첩산중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결국 구조주의라는 사조 안에서 제거된 주체의 자리에 대한 강박증이 비스듬하게 은폐되어있다.
문제는 주체의 자리에 대한 구조라는 측면에서조차 본편의 존재론이 기능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영화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각 게임 안에서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에 있다.
<비디오드롬>이나 <네이키드 런치> 등의 전작의 그림자가 제각각
기계-인간 혹은 환각 중독이라는 지점에서 본편에 인접해있다는 분석은 그다지 의미가 크지 않다.
그것은 본편이 망작이라는 기존의 평가에 대한 다른 등식이자 표현일 뿐이다.
전작의 충격이 실은 프로이드와 라캉의 울타리 안에서 그저 과격한 장식품이었다면
본편 역시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그같은 평가를 반복해서 들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취한다.
오프닝 이후 관객은 즉각적으로 이 모든 사건은 결코 출구가 없을 것임을 직감하는데.
이는 모든 중독에는 결과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하나의 중독이라는 남루한 시대 고찰에 1999년이라는 숫자의 비명소리가 겹쳐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이 엔딩에서처럼 굳이 예수와 12사도의 페러디일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시대의 예수는 게임 디자이너이며 그가 만들어낸 환각 안에서 우리는 즐길 뿐이라는 망상이 끼웃거릴 때
관객은 엔딩에서 두 주인공 남녀가 게임 디자이너들을 암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초기 남성 초능력 2부작과 <비디오드롬>에서 언급했듯이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예수의 수난과 재림으로 인해 세상의 구원이 가능한지 절반의 의문을 지속한 것처럼
관객은 누가 진정한 예수(게임 디자이너)인지 알지 못하는 밀레니엄의 전야제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예수의 좌측에서 왔고, 흡사 양처럼 보이는 털가득한 개에게서 권총을 꺼낸다.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게임 디자이너라는 것은 결국 신적인 완전함이 결핍된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관객 스스로가 독자적인 예수가 되기를 바라는 감독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10명의 사도 속에 속해있을 듯한 나 자신의 초라함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것이 엑시스텐즈 영문 철자 중 겨우 두 글자만 대문자로 솟아올라버린 이유라면 더욱 그렇다.
<엑시스텐즈>는 세기말을 맞이하는 감독의 근심이 철없는 대중에 대한 친절한 게임 놀이로 치장한 채
모두가 중독인 것을 모르는 시대에 당신이 예수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초라한 혁명 테러리즘의 초상화가 된다.
14. [TV 에피소드] 거짓말 의자 the lie chair (1975) : 유령들린 집은 촌스러워
아직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장편 감독으로 실질적인 활동을 하기 전
TV 공포물 <PEEP SHOW>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한 작품으로서
굳이 그의 미래에 대한 싹을 찾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일견 각본에 따라 그저 기능적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유령들린 집이라는 소재는 오랜 것이거니와
그 집 안에 오직 늙은 여성들만 남겨져있고, 젊은 여성이 자신의 유령 실감을 한다는 설정 아래서 해독한다면
유일한 남성 출연진의 초라함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얼개가 <식스 센스>, <디 아더스> 등과 비교할만큼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지 않는 가벼운 소품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자신이 죽은 줄을 모른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의 핵심은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 즉 그들이 되돌아가려는 장소에 어떤 흡입력이 있는가
혹은 유령이 집착하려는 인물과 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집중하게 되는데
본편의 제목인 '거짓말 의자'에 대한 대사로서의 해명 전달은 이같은 난제를 가벼이 포기해버린다.
그 집으로 돌아가야할 이유가 너무나 동화적이고,
이들, 죽은 자들 외에 어떤 타자들도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매혹조차 살려내지 못했다.
그들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곳에 남성 가부장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영원히 집이라는 아늑한 공간 안에서 머무르고 싶은 욕망
즉, 대사로 전달되다시피 일종의 퇴행적인 단계, 성인으로서의 진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일한 남성과 그의 여성이 사촌관계라는 혈연 애정관계적인 설정인데,
이것이 근친상간의 금기를 건드린다고는 할 수 없거니와, 본령은 상징계로 진입을 거부한 참혹한 결과 정도가 되겠다.
이같은 맥락 하에서 유령 들린 집의 다음날 아침 화창한 날씨 안에서 그들이 행복한 식탁 위 만찬을 즐기는 모습을
일종의 슬픈 보상으로 받아들여야할지는 이같은 속류 장르물의 규칙을 고려하자면 그다지 중요한 지점은 아니다.
<거짓말 의자>는 거짓말이라는 언어 밖의 세계를 통해서 영원히 위안받아야하는 상상계 속의 인물들에 대한 홈드라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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