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를 7번 만날 수 있었다.
장률은 1962년생이다.
5. 당시 唐詩(2004) :
빈 집, 당대를 입에 물다.
장률의 현재까지의 마지막 만남 그리고 동시에 그의 시작과의 조우
10년전 아트시네마에서 장률의 단편 "11세"를 본 기록이 있다, 하지만 기억은 없다.
그저 그런 수없이 많은 단편들 중의 하나로 그 감독이 언젠가 장편으로 명성을 얻는다해도
내가 그를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서 끄집어 되돌려 볼 수 있을까?
괜한 객담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장률은 언제나 잊어버림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우회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주체는 애매한 역사와 타자의 외면자로서 설정된 '우리'라는 설정 불가능한 공유집단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률은 건물 옥상에서 집단 폭력 살인이 있고, 아파트 계단에서 집배원이 넘어져 죽어도
우리의 바쁜 유흥 속에 끝없이 방치되는 살아있는 시체들을 바라본다.
그는 항상 열려진 채로 닫으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유럽 모더니즘이 그러하듯이 이미 죽어서 버려진다.
본편 " 당시"에서 당나라 시들은 텔레비젼 화면으로 보여져야하지만, 이상하게도 들려진다.
그리고 한문의 시가 자체가 감독의 지시대로 화면 위에 그려진다.(이것이 텔레비전 화면은 아닐 것이다.)
관객이 보아야할 것은 검정 바탕일까? 아니면 중국문학사 대대로 절창되었을 당나라 문장가들의 시일까?
장률은 왠지 시들 사이에 묻혀진 검은 바탕의 무수한 점들을 눈여겨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백과 두보, 왕유 등의 시가들은 삶의 무상함 사이를 자연 풍경과 벗의 소식 등으로 전하지만,
내게는 하얀 글자들이 써내려갈 수 있었던 멍한 바닥들이 더욱 애닮게 다가왔다.
한번도 태평하지 않았던 당대의 고립된 개인들의 노래, 그것이 어쩌면 "당시"에 대한 감독의 술회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당도해야할 곳은 외딴(복도 끝에 위치한) 집이다.
이제 영화로 가자.
이것은 닫혀진 집의 이야기이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의 헐벗은 사연이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장소의 유언이자, 친해질 수 없는 인간들 사이의 경계의 처형장이기도 하다.
보여지는 몇 개 이내의 공간들과 사람들,
미니멀리즘과 롱테이크, 얼굴 없는 표정과 기대 없는 삶의 중지들은 답답함과 식상함 사이를 오갈 뿐이다.
지극히 가난한 자본으로 이루어졌거나 데뷔작에서 뚜렷히 자신을 밝히려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양갈래의 결과물
변두리 허름한 아파트의 사람이 살고 있는 하나의 빈 집
아무도 떨어뜨릴 것 같은 휴지와 눈처럼 쌓일것만 같은 먼지들이 쓸어져야만 하는 일상
복잡다단하고 형형색색한 현대의 도시의 자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령을 실어나르는 낡은 건물의 관 승강기
당연하게도 사건은 존재하지 않고, 인물은 말하지 않으며, 다이나믹한 운동 또한 보여지지 않는다.
장률의 작품에서 우리는 대항과 그 연쇄물로서의 혁명을 꿈꾸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극 중 모든 인물에게 애정을 가지지 말라고 역력하게 충고하며,
그들의 신산한 삶 안에서 어떤 기적도 탄생하는 것을 딱딱한 몸짓과 흐느적거리는 손짓으로 발광시킨다.
수전증을 앓고 있는 40대의 남자는 도대체 면도를 하지 않는다.
그의 방문객은 모두 주관적인 사람들이 아니고 객관적인 타자들이다.
그들의 입을 빌려 영화는 이 남자의 수도 계량기가 깨끗하고, 노후를 위한 보험 설명을 듣게한다.
그가 팔을 떨고 있음은 성적인 불구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그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결코 그를 범죄나 성욕으로 유혹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 때 그들이 공유하는 두 개의 지점조차도 빈곤하다.
두 마리의 새는 어느새 세마리, 네 마리가 되지만 지저귐은 들리지 않고 집에 생기를 불어넣지 못한다.
오히려 점점 더 좁아지는 새장 안에서 새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걱정하는 시선이 꽂힌다.
주인공 남자에게는 노동이 없다, 그가 무엇으로 먹고사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한 때 뛰어난 소매치기였음을(지아 장커도 데뷔작 "소무"에서 소매치기를 주인공으로 올렸다.) 암시하지만,
그가 어떻게 하나의 공유점인 1인용 흔들 그네를 살 수 있는지 밝히지 않는다.
(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두 남녀가 같이 문 안으로 무언가를 사서 들어오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장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식사 시퀀스다.
식탁 위의 젓가락 놀림, 활기찬 대화와 왕성한 식욕의 공간이 아닌 말없는 생명줄의 미리 차려진 제사상
공유했음에도 같이 있지 못하는 두 남녀의 대면은 애시당초 외부와 차단된 집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대상이 다른 또 하나의 (비)공유지의 선택은
들리지만 말할 수 없고 보여지지 않는 목욕탕 칸 막이 너머의 자기 한탄의 목소리이다.
지나치게 닫혀있는 형식미의 완고한 고집은 관객에게 비동일시의 답답함의 미학을 전하지만,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심지어는 승강기의 층간버튼마지도 보여지지 않는)
건조함이란 일종의 무능력을 동반한다.
어디서부터 열어젖혀야 할 것인가에 영화는 대답할 정성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20여분이 지나면
관객은 결코 그들 중 누구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알고 체념하게 된다.
흔히 SF 호러 장르에서 보였던 바깥과 안의 무차별한 지옥도는 대개 마지막에 열려짐으로서 알려지지만,
감독은 승강기 문에 의해서 닫혀지는 얼굴이라는 수많은 TV 드라마의 클리셰의 습기제거성 활용을 굳이 행한다.
우리가 그들 사이로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불현듯 다가서는 두려움의 차단막은
여자 소매치기가 잠긴 문 앞에 서서 맞지 않는 열쇠로 문을 열지 못하고
맥주 두 캔을 마시고 거기 버려둘 때 강렬하게 작동한다.
그 순간에 이 영화가 결코 동시대의 한 복 판으로 들어와서
맞춤형 병풍에 기대어 몸부림치기를 거부하고 그저 집 안에서 항복선언을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소매치기가 끊임없이 수전증을 고치기 위해 얼음찜질과 뜨개질과 손목운동을 하고
여자 소매치가가 의외로 안무를 하고 자신이 무대에 서서 춤추기를 극도로 꺼릴 때
다시 한번 관객은 승강기가 결코 우리를 집 밖으로 데려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알게 된다.
습기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욕실에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증기가 가득차지만,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이건 옆집 노인이 가졌던 십만 위엔을 남자와 여자 혹은 누군가가 가져가고 살해했는지
스릴러로서의 범인 잡기가 아닌 루저들의 발악마저도 포착되지 않을 때
영화는 더 이상 관습적일 수 없는 권총 입에 물기로 멈춘다.
정리하자.
은퇴한 소매치기 남자가 살고, 그 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보험외판원과 수도 검침원 뿐이다.
여제자 소매치기는 마지막 한탕과 안무에 집착한다.
똑같이 한쪽 팔을 쓰지 못하고 복도를 빗자루질 하는 옆집 노인은 갑자기 죽었다.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라 장률의 스타일을 정리한 것이다.
그가 앞으로 스크린 위에 올릴 모든 인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애도의 전조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1년 뒤, 그 해 가장 아름다웠던 영화의 한 순간이었던 "망종"의 라스트씬이
지금 뒤돌아보니 얼마나 무성의하게 닫혀있었는가를 깨닫는 영화 타임머신에의 탑승
하나의 숨막힘, 몇 개의 얕은 기호, 안토니오니가 "붉은 사막"에서 보여준 황량함
장률이 "망종"이후 디아스포라의 세계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쳐다보았을까 싶은 상처받은 편린.
"당시"는 인물과 공간이 길항하여 끝내 소멸의 시간에 다다르는 잠언이자
폐쇄공포증의 불편함이 작가적 허영에 지쳐버린 승강기 묵시록이다.
(비밀상점)
대용량 일회용 전자담배 비밀특가!
(7047)
영화 월간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