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를 7번 만날 수 있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1970년생이다.
6.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
Only God Forgives (2013) : 혈액의 품격, 남자의 굴레에는 연약한 긍지가 있다.
기실, 본편에 대한 긴 글은 필요치 않았다. 처음에는 짧게 기존 글에다가 덧붙여 쓰는 쪽을 택했었다.
갑자기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이미 10 여편의 장편을 연출했다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감독의 전작에 대한 지난 졸문이 너무 산발적으로 해당 작품에 대해서만 주목했었고,
본편에 이르러 이제 감독의 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정리를 해야할 기점이 도래했다고 판단하여 선회했다.
그만큼 본편은 표피적인 핏빛 스타일과 광기로 좁혀진 복도, 말(言)의 불능, 폭력에의 세례 등을 걷어낸 이후에
앙상하게 캐릭터화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세계관이 단선적으로 드러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좋다.
<발할라 라이징>,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드라이브>에 이어 본편은 감독 세계의 미니어쳐라고 하겠다.
그가 본편을 <드라이브>에 이어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에 헌정한다고 엔딩에 언급했을 때
이는 선배의 초현실적 경계 파괴에서 자신의 고립적인 세계를 조성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현대 영화들, 최근 20년동안의 작가들의 작품들은 특히 서사를 압살해버린다.
어떤 영화를 보고서도 그 줄거리를 요약할 수 없는 경험은 이제 새롭지도 않을 정도이며
서사의 실재와 부재가 그 작품의 평가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정도는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다.
본편은 서사의 뼈대가 간략하게 존재하지만, 기실 그것은 본편의 형식만큼이나 무의미하다.
남는 것은 황량한 서사 안에서 뚜렷하게 남는 세 인물을 관객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놓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제목에서부터 추출할 수 있는 핵심 단어들, "오직, "신", "용서"를 추적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전에 재론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현재까지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단 한번도 여성의 이야기를 남긴 적이 없다.
흡사 이것은 오직 초능력적인 폭력을 가진 남성이나 의외로 무기력하거나 루저에 가까운 남성이
자기에게 가해진 운명의 굴레 앞에서 나름 저항하다가도 결국은 떠나거나 갇히는 등의 유사 죽음을 맡으면서
희망이라는 단어로는 간단히 설명될 수 없는 유아(소년, 소녀)를 통해 자신을 구조하려는 몸짓을 보였음과 동형이음어이다.
굳이 감독의 전작들을 언급하자면, 본편은 <푸셔> 3부작과 <피어 X>의 패배자로서의 사내와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발할라 라이징>, <드라이브>의 황망한 폭력성의 마초의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전작 <드라이브>가 흔한 영화광들에 대한 동지애적 일회성 최루탄인가 아닌가는 일단 논외로 하고
다시 감독과 호흡을 맞춘 라이언 고슬링은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줄리엔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게다가, 전작만큼의 초인성은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폭력의 육체를 완전히 제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가 '용서받는 대상'이라는 것이 명백하다면, 남는 질문은 왜 용서받아야하는가에 달려있고
그것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세계 내 인물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고찰이라는 점은 무의미한 동어반복이다.
영화의 자막 타이틀이 태국식 도 刀(칼끝이 뽀족하지 않아 찌르기보다는 베기에 좀 더 알맞은) 위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영어나 독일어가 아닌 태국어로 짐작되는 문자로 기술된 것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왜 본편의 무대가 서구 유럽이나 할리우드가 아닌 동아시아 국가인가로 확대될 수 있다.
이른바, 서구의 마약이 동아시아를 구속한다는 뜻의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추상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본편의 무에타이 전설이자 경찰로 등장하는 신적인 태국 중년남의 위치도 변경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같은 문자와 지역의 이동에서 그같은 포스트 식민주의를 읽는 것은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발할라 라이징>의 알 수 없는 고대나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의 영국 감옥이 그랬던 것처럼
본편 속 태국의 무에타이 경기장이나 유흥 주점, 도심의 밤 거리 등은 주인공이 던져진 또다른 굴레의 공간일 뿐이다.
칼 날위에 놓인 영화의 제목이 지나가면, 오프닝에서 줄리엔(라이언 고슬링 역)이 붉은 빛과 어둠 사이로 나온다.
본편은 이 붉음과 어둠을 영화 내내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은빛 황색과 더불어 프레임을 장악하도록 한다.
여기서 붉음이 핏빛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 피는 성스러움이 아니라 폭력으로 인해 분출되는 것이다.
줄리엔이 걸어나오는 후경으로 무에타이의 전설이 동상으로 보이지만,
정작 줄리엔의 시선이 집중되는 지점은 사진 속 무에타이 선수에게로 이어져있다.
혹시 동상과 사진 속 남자는 동일인물일 수도 있을까?
여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동상이라는 비인간적 형상에 대한
추앙이 아닌
사진이라는 정지된 시간 속 인물에게로 자신의 등장 시점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주인공은 지금 자신을 전설=신이 아닌 사진 속 선수와 동일시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걸어나가고 무에타이 시합의 링이 보일 때, 그는 지상이라는 사각 안에 자신이 놓여있음을 진술하는 것처럼 들린다.
의외로 주인공이 마약을 파는 것을 원격 조종한다는 것은 경기장 안의 짧은 장면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그로 하여금 과도한 마약 흡입으로 인해 환각으로의 도피를 선택하지 않도록하는 명령과도 같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는 피할 곳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형인 빌리가 영화의 가장 주목할만한 두 대사 중 하나인
"이제 악마를 만나러가자"라고 말하고 밤거리의 성매매 업소를 방문하여 폭력을 휘두르고
급기야는 미성년 여성을 강간 살해하고 경찰의 지시 하에 소녀의 아버지에게 구타 당하여 죽는 선택이 남아있다.
즉, 마약이 아닌 여성에 대한 강간 혹은 살인이라는 폭력적인 위안이 그에게도 선택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 줄리엔은 그같은 선택 대신 자신의 팔을 묶는 여성 접대부의 자위를 응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로부터 언젠가 자신에게로 찾아들지 모를 응징의 칼날을 환상으로 체험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역시도 죽음의 처형과 절단의 용서 양갈래로 추락할 것을 예감한다.
그렇다면 처형과 절단 사이를 가르는 유일한 면책은 어디에 있는가?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다시금 아이를 동원한다.
지금 주인공 줄리엔의 형, 빌리의 강간 살인이나 그로 인한 처형으로서의 보복살인은 중요치 않다.
차라리 제안되어야할 것은 그들 형제가 거의 동일하게 지옥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스스로가 갇혀있음을 인지하고
기꺼이 그 길로 떠나며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가령, 그 선택지라는 것은 또다른 중요인물 중 하나인 무에타이의 전설이자 경찰로 추정되는 '창'이라는 신적인 중년남이
그의 자손으로 추정되는 소녀와 대화를 나눌 때, 소녀가 말하는 극의 가장 중요한 대사인
"대화로 서로 좋게 풀었으면 해요"라는 말에서 찾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좀처럼 말이 없는(심지어는 주인공 줄리엔의 대사가 채 스무 마디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일 정도로) 감독의 남성들은
이에 반해 여성은 거의 해설자처럼 많은 언변을 한다, 본편의 크리스탈(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역처럼)
결코 대화를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면 대화는 불가능한 주문일 수 밖에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대화'의 가능성을 언급하기 때문에 소녀는 주인공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주인공 줄리엔 역시 죽음이 아닌 절단의 의식으로서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여지를 획득한다.
여기서 팔이란 수회에 걸쳐 클로즈업되는데, 이는 줄리엔이 자신의 폭력으로서의 운명을 직시하는 것과도 같다.
그는 자신의 손을 여성 접대부의 치마 사이로 넣거나 죽은 어머니의 시신의 복부 속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이는 폭력으로서의 두 팔과 손을 어떻게든 해동시켜보려는 주인공 줄리엔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중반부는 이같은 줄리엔의 노력 중에서도 가짜 연인을 내세워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삽입시킴으로서
흡사 <드라이브>의 스턴트맨 주인공의 옆집 여인과의 인연을 슬쩍 되살리려는 대화의 가능성을 엿본다.
물론, 그것이 결코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은 감독의 세계 안에서는 당연지사임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만일, 그것이 성공한다면 그래서 폭력이 탈색되고 말의 시간이 온다면 이는 감독의 변형이자 진전이 될 것이다.
주인공 줄리엔과 거의 신적인 존재인 창 사이의 무에타이 시합이나 줄리엔의 모친인 크리스탈의 살해는
서사상 관객들의 예측에 봉사하기 위해 동원된다는 점 이외에 그다지 경이로울 것은 없다,
영화의 중반부를 채우는 경찰 창에 대한 암살 기도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고어적인 고문과 실인을 하는 시퀀스 역시
본편의 흥미로운 리듬감과 서사의 진행을 위해 소비된다는 점 외에는 눈여겨볼 이유가 없다.
반복되지만, 그나마 주인공 줄리엔의 행위 중에서 자신의 손을 성 접대부의 치마 속이나 죽은 어머니의 뱃 속에 집어넣는 행위는
창의 자손일 소녀를 살려주는 선택과 더불어, 자신을 폭력의 감옥으로부터 출소할 열쇠를 획득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두 손이 있고, 창은 그의 팔을 절단함으로서 실질적인 용서를 행한다.
이쯤에서 좀 더 앙상하게 말해보자.
본편은 그저그런 뒷골목 느와르이자 복수극, 폭력의 알레고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주인공 줄리엔이 창에 의해서 팔이 잘려나갈 이유가 과연 있는가.
그의 형 빌리와 어머니 크리스탈은 범죄와 연관되 처형되어야하지만, 그는 왜 두 팔이 잘려져야하는가.
어리석게도 영화는 크리스탈의 입을 통해 줄리엔이 아버지를 때려죽였다라는 언급을 슬쩍 흘린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또다른 아버지, 진정한 폭력의 아버지로부터 엄중한 과거와 현재의 문책을 받고있는 것인가.
다른 요약문. 나는 서두에서 본편이 '오직', '신', '용서'의 세 단어를 추적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굳이 '누구를' 이라는 용서의 대상과 '왜'라는 이유를
추가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줄리엔과 빌리, 크리스탈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선택을 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과 절단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인간 군상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립의 존재론이자 근거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폭력때문에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신 앞에 외롭게 서 있기에 폭력성에 의탁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발할라 라이징>, <드라이브>의 남자들은 본편의 줄리엔과 동일하다.
그들에게서 고립과 폭력은 동의어이고 자신의 존재 증명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탈해야할 감옥이기도 하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그의 남성들에게 이같은 운명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당연히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감옥이 있고 그것을 탈출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는 설정은 가장 오래된 마초들의 동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직", "신", "용서"의 세 단어는 실상 본편 안에서 희미하다.
오직과 신이 동질하게 본편의 창을 지목하고 있을지라도 관객은 편안하게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
창의 절대적인 폭력이 신적인 존재 증명이라면 관객은 반론적으로 그를 또다른 줄리엔으로 상정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기라도 하듯이 영화는 세차례에 걸쳐 창이 노래하는 장면을 반복한다.
창의 노랫말이 자기를 이해해달라는 거만함과 고귀함 (PROUD) 사이에서 존재한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용서가 '신'과 '오직'이라는 단어 대신 '당신- YOU'로 변경되기를 기원했음을 인정할 수도 있다.
누구를 왜 용서해야하는가에 깊은 미련을 두면서도
엉뚱하게도 신과 오직이라는 단어를 앞에 내세운 이 단조로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통조림같은 영화는
언제쯤 인간의 세계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정착할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핏빛 처형의 고어의 품격만 쌓아올렸다.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는 홀로 던져진 자의 운명같은 폭력의 비상구가 여전히 닫혀있음을 명시함으로서
당신의 두 손은 지금 절단의 형벌을 피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게하는 낡고 깡마른 실존의 빈곤 액션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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