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일이란 그저 해야 되는 것의 범주 였습니다.
사실 처음 대학에서 경영학부를 선택한 것은 어린 시절 강렬하게 다가 왔던 만화의 영향이었고,
그래서 회계사를 지망해 대학을 갔던 것 이었죠.
그러다 인사, 조직 개발, 심리 쪽에 관심이 생기면서 회계 쪽은 아예 접었었습니다.
짧았던 첫 직장에서 전략, 인사 컨설팅을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저의 직장 생활은 전부 회계 업무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저 보다 10여 학번이나 위 선배의 부탁으로 회계법인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가지고 있던 회계 지식은 고딩 시절에 보았던 회계 원리와 대학교 1학년 때 전공 필수로 들었던 회계와 사회
그리고 일하게 되면서 전날에 급하게 사서 읽었던 회계 원론이 끝 이었죠.
소득세율도 모르고 누진 공제가 뭔지도 모르고 양도소득세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던 상황에서
첫 날 맡았던 일이 권리 관계가 50명 이상으로 얽힌 오래된 상가 건물의 보상가액에 대한 양도소득세 계산 이었습니다.
천페이지가 넘는 양도소득세 실무편람 가져다 놓고 계산 프로그램 열어 놓고 밤 10시 까지 맨 땅에 헤딩하면서 일을 했었죠.
그렇게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했던 첫 번째 업무 이후에 이쪽이 저의 밥벌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그냥 일 이니까 하는 것 이었죠.
가끔 풀리지 않던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어 나가는 것에 재미를 느낄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일 이었죠.
그냥 해야만 하는 것.
그러다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뭐...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전 보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훨씬 적도 일도 많이 줄어들어서 일까요?
내가 해야 될 일 외에도 하면 좋은 일 까지 생각을 하고 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항상 머리 속 으로만 품고 있고 실제로 준비하고 실행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지금 그려 보기 시작했습니다.
직급이 안되서,
시간이 없어서,
여건이 안되서,
확신이 안서서,
아무런 권한이 없어서.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들은 이런 저런 핑계들로 그냥 이거 더 좋을 텐데 혹은 이랬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하는 것 들이
단순히 머리 속의 상상 수준에서만 머물렀었습니다.
이야기를 해 봐야 먹히지도 않고 직급 만으로 바라보는 모습에 지치기도 많이 했었죠.
그래서 그냥 단순히 일만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던 것 이지요.
그러다 직장을 옮기면서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걸 자료로 만들어서 보고를 올리면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집니다.
위에 법인장이고 상무고 뭐고 다 뛰어 넘고,
사장님이나 회장님께 직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죠.
일단 큰 그림을 그렸던 것이 오케이가 되었고 내년 하반기 시작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것이 아닌 회사의 방향과 직결 되는 것을 제 손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전과는 다르게 일하는 것이 싫지가 않습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뽑아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아무 때나 그리면 되는 것 이니
부담감이 없어져서 그런지 좋은 생각도 곧 잘 떠오르네요.
역시 일 이란 내 재량권이 커저야 재미란 것이 생기는 것 인가 보네요.
요즘은 출근하는게 지루하거나 싫거나 하지 않고 '뭐, 일하는 시간이구나'라는 생각 정도 밖에 없네요.
역시 여기로 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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