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

[참고 : 글쓴이는 女 그 애는 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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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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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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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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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애와 나도 가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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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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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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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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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의 아버지는 한 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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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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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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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인형에 눈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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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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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방에서 몸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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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 두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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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화장실 옆에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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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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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자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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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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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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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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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가난했고, 그 애는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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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동네는 국민학교도 작았다.

우리는 4학년때 처음 한 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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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 애 집을 지나가다가 길가로 훤히 드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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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다 라면을 끓이는그 애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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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입은 늘어난 러닝셔츠엔 김치국물이 묻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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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엔 김치국물 같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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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움인지 서로를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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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 부엌 뽑기만들기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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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국자와 설탕을 훔쳐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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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바닥을 까맣게 태우면서 우리는 친구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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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좀 풀려서 우리집은 서울 반대편으로 이사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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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친척이 소개시켜준 회사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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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밀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부업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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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그 애에게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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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일 년 동안 쓴 딱딱한 커버의 일기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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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애는 얇은 공책을 하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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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몇 장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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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4일 개학했다. 선생님한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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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일 딸기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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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일 누나가 아파서 아버지가 화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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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4일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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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딸기를 먹으면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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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먹는 것이 일기를 쓸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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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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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아버지는 그 애 누나가 보는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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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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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이따금 캄캄한 밤이면 아무 연립주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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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린 옥상에 올라가 스티로플에 키우는고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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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를 따 버린다고 편지를 썼다. 이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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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 들어간 미술부며 롯데리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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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 미팅 따위에 대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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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보자, 만날 얘기했지만 한 번도 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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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애의 편지가 그쳤고, 나는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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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생일에 전화가 왔다. 우리는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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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이라며 신라면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온 그 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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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오토바이사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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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구멍가게 앞에 쌓인 것을 그냥 들고 날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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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역 앞에서 삐끼한다고 했다. 놀러 오면 서비스 기차게 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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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하게 취해서 그애가 말했다. 아냐. 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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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그 애가 준 신라면을 하나씩 끓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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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계란도 안넣고. 뻘겋게 취한 그 애의 얼굴 같은 라면국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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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대를 졸업했고 회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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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 애가 미니홈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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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으로 지하철에서 자살한 사람의 갈린 살점을 대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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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담으면서 2년을 보냈다고 했다. 강원도 어디의 도살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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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잡으면서 또 2년을 보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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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몇백마리의 소머리에 징을 내려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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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탁주와핏물에 젖어서. 어느 날 은행에 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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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날 피하더라고. 옷은 갈아입었어도 피냄새가 배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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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작업장에 앉아있는데 소머리들이 모두 내 얼굴로 보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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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 애는 술집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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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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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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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마. 국민학교때 친구 하나가 전화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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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연락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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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옥장판이나 정수기라면 하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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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하고 집에 내놓은 것도 없으니 이 참에 생색도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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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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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면 가끔 만나서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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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엔 오뎅탕에 정종.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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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어느 물류창고에 직장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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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정신을 놓아버린 그 애의 누나는 나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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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나는 홀아비에게 재취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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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둘인데 다 착한가봐. 손찌검도 안하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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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적어. 그래도 월급나오면 감자탕 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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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물류창고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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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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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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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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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는 우리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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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 잡은 적 없지만 그 애의 작고 마른 몸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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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잠이 드는 상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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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을까. 그 말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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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조용히 그러니까 난 소중한 건 아주 귀하게 여길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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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텐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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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사랑은 계산이 빠르고 겁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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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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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애가 좋았지만 그 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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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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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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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명


2013년 제가활동하던 카페에
이십색기소년이라는 분이 퍼오셨던글을
다시금 우연히 접했기에
옛날 생각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