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원회장 목수정의 조국 사태에 관한 글

조국 대전 시즌 I 이 끝났다.

한달 만에 막을 내린 스카이캐슬 현실 버전 + 정치스릴러를 지켜 보는 내내 12년 전 그 사건이 떠올랐다. 신정아.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녀가 어느날 추락을 시작하면서, 자신 뿐 아니라, 그녀가 거쳐간 모든 곳을 초토화시켰고, 여세를 몰아, 우리 사회의 거짓 학위로 행세해온 자들의 가면들을 벗겨주었다. 동양대 최성해 총장도 그 때 새출발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오늘의 개망신은 면했을 터인데.

2007년 당시, 조국은 “신정아에게 '감사'하라”라는 칼럼을 한겨레에 기고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딸이 단국대 의대 장영표 교수 밑에서 2주짜리 인턴을 하던 그해였다. 결국엔 " 미숙하고 조악한 2장짜리 초고였을 뿐“ 이란 말을 장교수에게서 들었지만, 제1저자 타이틀만은 챙길 수 있던 그 작업을 딸이 하던 시절, 조국은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가 한 사람을 계기로 다 드러났으니, 모두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번 조국대전에서 신정아가 자꾸 생각났던건 필시 이 칼럼 때문이었을 터이다.

두 사건은 많이 닮았고, 또 많이 다르다.

의전원, 특목고, 해외거주특례, 총장 표창장, 의대, 법대, UN에서의 인턴, 교수들의 인턴 품앗이 그리고 사모 펀드,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들의 세계가 거침없이 민낯을 드러냈다. 흥행률이 높았던 요소다. 이건 신정아 때와 비슷했다. 몹시 낯설었던 한가지는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할 바른 소리를 해주던 한 지식인이 바로 그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단 사실.

기자들을 두서없이 바빠지게 만들었고 전례없는 언론의 선정주의가 판을 친건 비슷했지만, 그 결말에 가서, 한 청와대 권력자가 낙마하는 대신, 하나의 실세 장관이 탄생했다는 점도 극단적 대조를 이룬다.

긍극적으로 그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당시 평범한 사람들에겐 환멸과 더불어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했던 저명인사들의 가면 뒤 민낯들의 도미노가 도저하게 출렁이기는 하나, 그 때처럼 펼쳐질 것 같진 않단 사실이다.

맞불 차원에서 나경원 아들도 고교 시절 논문 제1저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세상은 거기에 뜨겁게 반응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나경원의 도덕성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는 전제가 그 원인이겠으나, 부모의 번쩍이는 계급이 슥삭슥삭 만들어준 스펙으로 명문대에 간 아이들의 리스트가 나오리란 기대는 아무도 안하는 눈치다. 그보다는, “그 땐 모두가 그랬다. 그 시절엔 그게 상식이다” 라는 말이 두터운 담요처럼, 혹은 잡소리를 덮는 사이렌처럼 모든 불온한 시도를 거의 발작적으로 질식시킨다. 예수, 간디 운운 해가며…

답은 하나다. 너무 많은 사람을 부도덕한 무리로 만들 순 없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사회의 핵심 권력층을 이루는 586의 다수가 그 부정한 행위들의 공모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혼란스런 이성을 맑고 단정한 어조로 정리해주던 그 사람이 민낯을 드러내고 권력이 된 순간, 촛불을 들면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3차 촛불을 들었던 서울대생들처럼. 586이 기득권이 된 순간, 한 시대가 갔고, 새로운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던 당시 그의 칼럼 한도막을 꺼내본다.

“둘째, 청와대는 현행 고위공직자 검증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확인하게 해준 신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청와대는 최고의 권위, 인력, 정보를 가지고 사람을 빨가벗기듯이 검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검찰 수사 이전까지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거짓말과 직권남용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직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권력 중심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엄정하고 철저하게 검증을 해야 권력의 투명성과 정당성이 유지되는 법이지만, 청와대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대통령은 확신에 찬 ‘실언’을 하여 이후 ‘망신’을 당하였고, 참여정부의 검증체계는 도마 위에 올랐다. 내년에 청와대에 입주할 사람들도 이상을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도, 조국도 당시의 조국 말을 명심해 들은 것 같진 않다. 그럼 이젠 누가 이 말을 명심해 들어야 할까?

사족: 우리 사회가 고마워했어야 할 그 신정아씨는 지금 잘 지내고 계신듯함 . 2018년부터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의 상임이사겸 총괄사업본부장으로 계심. 희대의 학력위조범에게 재외동포자녀들의 한글교육을 맡기는 우리. 2007년의 조국 칼럼을 읽은 사람은 많았지만 새겨들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