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측근의 배신…"우크라이나와 대가성 거래 맞아"

확실히 미국은 관료라고 해도 자기 소신이 뚜렸한 사람들이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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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랜드 EU대사 청문회 증언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대가로
바이든 父子 조사 압박 주장
펜스·폼페이오에도 보고
트럼프에 불리한 증언 잇따라

몸통 줄리아니 소환 주목
트럼프 "대가 안바라" 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하원의 탄핵 사유인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대가성`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왼손에 든 메모(오른쪽 위)에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대가성 거래)를 바라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EPA = 연합뉴스]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대가성 거래)가 있었느냐고요? 제 답은 '예스'입니다."

고든 선들랜드 주유럽연합(EU) 미국대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대가성 거래를 부인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배신'하는 공개 증언을 내놔 워싱턴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그는 이날 자신들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를 대가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조사를 압박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선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 조사가 원조의 조건이라고 나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다"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주 애플 공장에 방문하기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자필 메모지 한 장을 들고 기자들 앞에 서서 대가성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가 들고 있던 메모에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말하라. 이게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말"이라고 쓰여 있어 언론의 초점이 됐다.

선들랜드 대사 증언이 파장을 일으킨 것은 지난 13~21일 하원 정보위원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했던 다른 11명 증인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지휘하에 릭 페리 에너지장관, 커트 볼커 전 우크라이나 특사와 함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깊숙이 개입한 4인방 중 한 명이다. 또 지금까지 증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호텔과 은행을 경영하던 사업가 출신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 100만달러를 후원하고 주EU 대사 자리에 낙점된 '낙하산'이다.

지난달 하원 비공개 청문회에서는 대가성 거래를 부인했다가 막판에 서면 보고서를 통해 입장을 바꿨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것은 위증죄 등 법적 책임을 피하고 책임을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 떠넘기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날 증언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수위가 높은 발언이 쏟아지자 공화당 청문위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들랜드 대사는 그러면서 자신은 우크라이나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 조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염려를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존 볼턴 전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비롯한 백악관 NSC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을 인지하고 있었다고까지 증언했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에게는 이메일로 관련 보고를 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일종의 '물귀신' 작전을 구사한 셈이다. 다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으며 기록도 없다"면서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이날 증언에 나선 로라 쿠퍼 국방부 부차관보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측이 이미 7월 말에 미국이 3억9100만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보류할 것이란 사실을 인지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측이 원조 동결 계획을 몰랐다며 대가성을 부인해온 백악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서 증언대에 선 전·현직 관료 대부분도 우크라이나에 조사를 요구한 것이 국익에 배치되며 '비선 팀'을 운영한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은 "뇌물죄 이슈의 심장부로 향해가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백악관은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나는 그(선들랜드)를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저녁엔 트위터를 통해 "선들랜드의 변호사 4명이 모두 민주당 후원자"라는 폭스뉴스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선들랜드 대사 증언은 상당 부분 추정으로 이뤄져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게 군사원조나 백악관 회담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바이든 전 부통령 수사) 공개 발표과 연계돼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했다"고 강조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선들랜드는 매우 적은 접촉에 기초해 추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지난 2주간 공개 청문회를 통해 파상 공세를 펼치며 일단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황상 불리한 증언을 다수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의 '몸통'인 줄리아니 전 시장을 비롯해 볼턴 전 보좌관,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폼페이오 장관 등을 증언대로 불러내 결정타를 날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들의 출석 여부는 법원 판단에 달려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