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9년간 배상금 500억 안 주고 버텨

[단독]미국, 9년간 배상금 500억 안 주고 버텨
이혜리 기자 [email protected]

24일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법원 판결 등으로 미국 정부가 손해배상금을 분담해야 하지만 내지 않은 액수는 501억6300만원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배상금 총 555억2600만원 중 53억6300만원(9.66%)만 지급했다. 같은 시기 한국 정부는 배상액 743억9500만원을 부담했다.

미군으로부터 입은 피해 구제는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거나, 관할 지역 검찰청에 신청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한국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한 뒤 미국 측에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구조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군에 책임이 있어도 한국이 25%, 미국이 75% 비율로 배상금을 분담한다.

전체 피해사건 1594건 중 미국이 배상금을 미지급한 사건은 72건이다. 소음피해·환경오염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청구한 배상금을 미국은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춘천비행장·오산비행장·평택비행장·매향리사격장 등 소음피해가 42건이다. 미지급 액수로 따지면 450억8500만원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녹사평역·캠프킴기지·캠프험프리기지·군산미군비행장 유류오염 등 환경오염 피해는 16건이다. 액수로는 49억3400만원이다.

미국은 배상금 미지급 근거로 SOFA 5조2항을 들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조항은 한국이 미군 시설과 구역의 사용을 보장하고, 이 같은 사용은 제3자의 손해배상 등 청구권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시민단체들은 “주한 미군기지 내 환경 사고의 발생 횟수와 규모가 막대함에도 정화 비용 부담 등을 주한미군에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다”며 SOF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교통사고 등 피해에 대해서는 한국이 청구한 55억700만원 중 대부분이 지급됐다. 가해자가 명확하기 드러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지급액은 1억4400만원이다. 미국 측은 미군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1400달러(약 164만원) 이하의 금액은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SOFA 23조 2항을 들어 지급을 거절했다.

법무부는 피해사건들의 구체적인 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향후 분담금 지급 청구를 위한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고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이 포함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법무부는 “미국 측에서 지급을 거절한 분담금에 대해 SOFA 민사청구권 분과위원회를 통해 매년 지속적으로 지급을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SOFA에서 정한 미군 시설·구역 사용 보장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미지급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개인 사유지에 불법으로 철도를 건설했다가 한국과 미국 정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사건이나, 미군 차량이 안테나를 세우고 지나가다가 전철 위의 전차선을 쳐 피해가 발생한 사건 등이다.

한국과 미국 측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을 하고 있다. 채이배 의원은 “미군이 재판 결과 등에 불복해 정당한 사유 없이 손해배상 분담금을 미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미군의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등 한국 측의 협상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